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아버지에 대한 기억 - 2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수학 경시대회에서 동상을 받아, KAIST 에서 국제 대회 선수 선발을 위한 수학 겨울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달여 동안을 지내게 되었다.

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었다. 

1학년때는 수학 올림피아드를 참가하지도 않았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2학년때 본 것이라서 그리 자랑스럽지도 않았고, 동기들은 2학년때 KAIST 에 합격해서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고등학생이었으니 말이다. 

평소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떨어진 것이 너무 억울했다.

답안지에 실수했을거라 생각했다.

기죽어 있던 나를 격려해 주신 건 아버지였다.

여전히 아버지에게는 내가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던 것 같다.

2학년때 입시에 떨어진 후에 아버지는 학교에 찾아오셨었다.

팔목 시계를 하나 사 오셨다.

담임 선생님을 먼저 만나시고, 상담을 하셨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 앞에서 그 시계를 선물 하시면서, 앞으로 1년 다시 잘 하면 된다고 격려해주셨던 장면이 떠오른다.

동시에 그 해 겨울에 대전에 있는 수학 올림피아드 겨울 학교로 큰 이불짐을 아빠와 함께 이고 하얀 눈밭을 걸으면서 대화하던 모습이 교차되어 떠오른다.

당시 차도 없어서 고속버스 타고 일반 버스 타고 갔었더랬다.

2년후 쯤에 아버지는 승용차를 할부로 사셨다. 쥐색 엑셀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는데, 자식한테 부끄럽지 않으시려고 무리하셨던 것 같다.

그 새하얀 눈밭에 빛나던 햇살이 아직도 따스하게 기억난다.

아버지와 나, 둘이서 뽀드득 뽀드득 걷던 아침의 햇살.

그 겨울 학교의 풍경은 참 신기했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영재라면서 우리랑 같이 공부했다. 

대학교 교수님들한테 수학을 배우는 느낌도 달랐다.

집중력 강화라며 심호흡을 하면서 자기 최면술 같은 것도 배웠다.

그런 소중한 시간이 아버지가 데려다 준 여행과 같았다.

몇달 후에 선수 선발전 시험이 있었는데 아쉽게 선발되지 못했다. 

수학 문제 6개를 4시간 동안 풀었던 것 같다.

아쉬운 점수차로 떨어졌다고 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될 뻔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자부심을 간직하고 이후 인생을 살았던 것 아닌가 싶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