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아버지에 대한 기억 - 1

 

아버지를 마음으로 아직 못 보내드린 것 같다.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나고, 나에게 애썼던 마음이 문득 문득 떠오른다.

특히, 아무도 나를 챙겨주는 것 같지 않는 순간에 그렇다.

북받쳐 오르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따스한 느낌이 심장을 치고 지나간다.

그 따스한 느낌을 붙잡으려 지나간 추억들을 더듬는다.


나를 격려해주었던 모습이 생각난다.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싸우셨다.

어린 나에게는 정말 지옥과 같은 날들이었다.

무엇때문에 싸우셨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묻지도 않았다.

전주의 20평짜리 임대 주택에 방이 3개 있었는데, 부모님과 어린 동생이 자던 안방, 내 방, 그리고 창고나 게스트 룸으로 쓰던 방이 있었다.

부모님이 싸우던 날 다음 날은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시지 않고, 빵 사먹으라며 1천원인가 2천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크게 싸우셨는지 아버지는 창고같은 방에서 한달을 주무셨다.

그러다가 나를 부르셨다.

앞으로 학창 시절에 영어가 중요하니, 영어를 나에게 가르치겠다고 하셨다.

기초 영문법책을 하나 사오라며 5천원인가 1만원인가를 주셨던 것 같다.

다음 날 서점에서 책 한권을 골라서 창고에 있는 아버지를 찾았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대학교 시절에 과외 했던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많이 가르쳐봤다고 하셨다.

뭘 배웠는지는 기억도 안 나는데, 꼬박 몇달을 가르쳐주셨던 것 같다.

그때 아버지 나이는 40대 초중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들 교육에 대해 엄청 열정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나는 하나 뿐인 딸에게 그러질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정작 딸은 내가 가르치려고 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서운함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받아들이게 하는 것도 그 분의 스킬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대학때 보시던 민중서림의 영한사전을 보여주셨다.

닳고 닳아서 책이 반듯하지 않았고 책 안의 내용은 빨간 볼펜으로 공부하던 흔적이 많았다.

과외 할 때 부잣집 딸을 가르친 적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ㅋ 

지금와서 추측컨데 썸타는 정도였던 것 같기도 하고 ㅎㅎ ,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탄식도 들었던 것 같다. ㅋ 

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입학하면서 작은 아버지도 서울로 오셔서 공부했던 이야기도 하셨던 것 같고, 작은 아버지도 공부 잘 하셨다면서 자랑스러워하시곤 하셨다.

아뭏든 그렇게 열심히 하셨었구나라고 느끼며 나도 영어 공부에 관심을 느끼며 공부했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중학교 내내 영어는 1등을 놓치지 않고 후에도 영어는 즐기면서 공부했었다.

감사함을 아직도 느낀다.

여운이 아직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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