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1일 월요일

화 그리고 의심

내가
의심하지 않고,
화나지 않고,
지킬 수 있다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싫다는데
좋다고 해도
돌아서지 않고
받아주지 않는다면
지칠 것이다.

그냥 불확실한 상태를
견딜 수 있다면
조금씩 호전되겠지.

끊는다고 해도
미련을 버릴 수 있다면
...
이건 못 버릴 것 같다.
미련을 버릴 수 있는
대안이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예라고 해도
의심할 경우라면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르는 경우일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경우에
내 인생을 투자할 것인가
불확실한 경우와
책임지는 것에 대한 사명감을
어떻게 떨칠 수 있을까
다만 기도하고
클루를 잡고
당차게 하면
될 것이다.

신뢰

신뢰(Trust)는 전문성과 정직함에서 오는 믿음(Credibility)과
약속과 이행이 연결된 경험의 반복, 즉 일관성에 의한 예측가능성(Reliability),
그리고 감정적인 믿음, 즉 친밀감(Intimacy)을 합한 값을
자기중심성, 즉 이기적 성향(self-interest)으로 나눈 값으로 산출된다.
T = (C+R+I)/S 가 바로 신뢰 방정식이다.

- 데이비드 마이스터, ‘신뢰의 기술’에서신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힘든 걸

힘든 걸 어떻게 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잖아

포기하기에 너무 크잖아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나는 누군가?

마음을 많이 여는 타입이라서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은 자라오면서 교육받고 생각해온 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옳고 그림에 대한 가치관이 행동으로 발현되어
상철르 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닫을 수 없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나를 노출하게 한다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마음과 생각들을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일신을 모두 100% 믿는 것만이 그 길에 가까와지는 길이겠지.
가급적 공통분모를 늘리는 것이
덜 외롭고 덜 상처주는 길이겠지.
상처 안 주고/받는 완벽한 관계가 있을까?

마음을 닫고 싶지 않다
그걸로 남에게 피해가 된다면
마음을 열어서 남에게 피해가 된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일이다
마음을 닫고 싶지 않다
그들도 나처럼 외로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적절한 밸런스...상대적인 상황들을 파악해야 하는 거다.
철없이 굴지 말자 제발.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나만의 세상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소극적이라 할지라도
그 외로움을 극복하는 길이 나를 찾는 길이라 생각된다.
많은 위인들은 역사에서 보여줬다 이미.

결혼은...
종족 번식?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
나를 육체적으로 후세에 남기기 위한 미련한 희망?
적자생존이라는 자존심?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
행복하기 위한 도구?
자식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
사회를 버린다면 남는 것은?
육체를 버린다면 남는 것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닐 수 없는가?
육체의 유한을 무한으로 확장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결국 행복 아니겠는가?

결혼전에는 이 세상이 하나의 퍼즐맞추기 게임인데,
그것을 맞추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회적인 관점보다는 영혼적인 관점에서...

근데 나는 왜 결혼식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가?

인생에 의미를 둘 필요가 있는건가?

인생에 의미를 둔다면,
나에게 짧게는 30~40년, 길게는 50~60년이 남아 있다.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행복해야겠다.
100점을 쫓다가 10점도 못 받는 불행한 인생을 살고 싶진 않다.
뭘 버려야 하는가?

뭐가 최적화된 방법인가?
인생을 최적화 되게 살아야 하는건가?
뭐에 최적화를 맞춰야 하는가?

인생에 단 한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얼까?
한가지가 아니라면 몇가지가 있다면 무얼까?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버려야 하는가?
선택한다면 어떻게 최적화 하고 밸런스를 맞출까?

이러한 선택들이 현세에서의 나를 규정하는 것 같다.

행복-직장,가족,그리고 종교
이 세가지 축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들 그러고 산다.

난 뭘 선택하고, 얼만큼 비중을 두고, 나머지 재미/취미들은 어떻게 할까....

큰 결정을 하고자 한다
부디 지금 옳은 선택을 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세에
사람이 진화를 한다면
세상도 진화하고
영화 AI 처럼, 바이센테니얼맨처럼
영원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면
그때 나의 유전자가 필요했다면
나의 업적이 필요했다면
나는 뭔가를 한거겠지
반대로 그 세상이 결국 오는거라면
내가 뭘 하든 나의 존재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세상이 진화하는데 나를 투자할 것인가
나를 진화하는데 투자할 것인가
내가 행복하는데만 투자하면 되는 것인가

이미 포기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살까

진화는 하기나 하는 걸까?

기독교는 진화를 믿지 않는다
기독교 교리라면
인간의 진화를 위해서 적자생존을 위해서
스트러글할 필요가 없다
사회가 진화하는 것은 믿는가?
사회가 없어지는 것과
사회가 하나로 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같은거 아닌가?

사회는 어디로 진화되어야만 하는가?
나는 거기에서 뭘 해야 할까?

이러한 결정들을
제대로 선택한다면
열정이 스스로 생길 것이고
그것이 나의 인생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실 내가 열정적이었던 것은
내가 나름대로 구축한 뚜렷한 인생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을 갖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제 조직을 이끈다면,
그들의 가슴에 불을 당기리라.

행복의 길로 선택하기

사소한 것들도 행복한 길로 선택해야 한다.
편안하고 안전하면서도
인생에 의미있고 진취적인 일을 할 수 있다.

진취적인 일이 항상 행복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 만드는 습관이
몸에 베어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의구심을 가져야겠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선택들이 나를 만든 것이다.
어떤 선택들이 나를 좋게 만들었고
어떤 선택들이 나를 힘들고 곤란하고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판단해봐야한다.

뼈에 져리는 반성을 하고 나면
나는 좀 더 달라져있겠지.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하나님을 믿는 이유


난 사랑을 믿는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벌써 사라지고 무너졌을꺼다
사랑은 이세상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난 신이 있다고 믿는다
신을 믿는 종교들이
인간 역사상 그 많은 박해를 받아도
증거들로서 그것들을 이겨냈다
단순히 인간의 마음에 사랑이 있었다고 그러진 않았을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인간 자체가 신의 일부였다면 말이 될 수도 있다.
인간 자체가 신의 능력을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메시아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되기도 한다.
그것을 발견하게 하는 힘은 또 무얼까
그것을 일깨워 준 것이 예수님 아닐까

신은 유일신일까...
그건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은 이렇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말씀하신다.
생각해보면 하나님들이었다면
이 세상이 매우 혼란스럽지 않을까
하나님의 반대세력은 있어 보인다
아직 평화를 이룩하지 못한 것을 보면...
신이 여럿 있어서
평화를 위한 세상이 분열된다면
그 반대세력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 같다.
신이라면 완벽히 융합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건 하나가 아닌가

불교의 부처도 난 하나님이 아닐까 한다.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시는 것 아닐까...
사람이 이해하는 세상이 다를 수 있으니까...
측은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도 보여주시는 거라 생각한다.

난 사랑하고 싶다
사랑을 실천하고 싶다
나 스스로 신의 능력을 실천하고 싶다
증거하고 싶다

제 생각이 맞는지 알려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의심이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