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아버지에 대한 기억 - 4

 

어제 아버지에 대한 글을 몇개 쓰고 나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더 떠오른다. 

참 지독하시다.

아버지는 돌아가셔도 이렇게 나를 붙잡고 계시다.

왜 아니겠는가? 내가 아버지라도 두고 온 자식이 그리울 거다.


아버지가 나를 돌봐준 준 지점에서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하셨던 거다.

남들이 감히 못 가는 학교에 갔었고, 지원 없이 나름 자수성가했으니까....

큰 말썽도 없었고, 재능있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계셨을거다.

나는 살아생전에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표현을 잘 못 했다.

그게 너무 죄송하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면, 내 스스로 잘 나서, 내가 스스로 길을 닦아왔다고만 생각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배려와 사랑이 아니었으면 무너졌을지도 모르는 건데...


아버지가 탄식하던 순간이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당시 '오락실'로 인식되던 그것은 그저 일탈행위로만 보였을것이다.

재능 있는 아들이 유학가서 더 큰 세상을 배우고 일반적으로 더 근사한 일을 하길 바라셨다.

나중에서야 큰 돈을 만지고 부모님 집도 사드리고 나서야 인정하셨지만...

그떄까지는 여전히 그 긴장감이 존재했었다.

유학가라, 차라리 의대나 법대로 다시 들어가라.

나는 혼자서 속으로 외쳤다.

'우리 집 형편에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다고요'

'그런 쪽은 나 아니더라도 더 잘 할 사람들이 많다고요'

나는 대학 때 아버지 뜻대로 성장하지 않았다.

게임에 빠졌다.

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게임 플레이에 게임 동아리, 게임 개발에 몰두했다.

학점은 당연히 안 좋았고, 학사 경고를 받았다.

평생 그런 점수를 받았던 적이 없었는데,

그걸 보시고 아버지께서 희미하게 탄식하시던 한숨이 생각난다.

안타깝지만, 나도 그 탄식을 들었다.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 드디어 아버지께서 포기하신거야.

내 인생이잖아. 내 인생인데, 참견따윈 필요 없다고.

...

아버지가 당시 내 이름을 딴 공장을 만들고 운영하셨는데,

무척 고생이셨다.

그 후 이십년이상을 고생하신 것 같다.

덕분에 어린 동생은 내가 살던 시기보다 더 고생했다.

물론 그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아마도 아버지도 일할 맛이 안 났던 것 아닐까

지금 추측해 본다.

...

내가 더 설득했어야 했다.

내가 좀 더 내 비젼에 대해서 설명드렸어야 했다.


나는 아버지를 설득하기보다는

이 분야를 이해 못하는 아버지를 외면하였다.

하기사 오락실 게임 만드는 아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이잖는가?

내가 좀 더 아버지를 진심으로 대했다면 

아버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설득력을 키웠더라면

나에게도 그 키워진 설득력으로 사회생활이나 사업 피칭에 도움이 되었을수도 있었텐데 라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게다가 결혼 상대자에 대한 마뜩찮은 시선도 분명 존재했었다.

내가 사랑했던 상대는 그 점을 눈치채고 분통 터뜨려하곤 했었다.

아버지가 나의 성장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하고 계셨을거다.

더 행복하길 바라셨을거다.


고등학교 입학 시험장에도 따라오셨던 기억이 난다.

수험번호가 '135'번 이었던 기억이 뚜렷이 난다.

아버지께서는 더하면 '9'라면서 완벽한 숫자라고 하시면서, 긴장한 나를 다독이셨다.

졸업식 날에도 멋진 정장을 입고 오셔서

함께 기뻐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송구스럽다.


대학에 가고 사회에 가면서 나는 점점 그런 아버지와 멀어져갔다.

10년이 지나 2002 월드컵 때 , 표를 구해, 부모님과 함께 대구에서 우리나라 경기를 보고 짜장면을 대접해드린 기억이 난다.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 당시 나는 선배와 게임 회사를 차려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었고,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의 멘트나 행동에서 긍정적으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서먹해진 사이.

아버지도 나를 어쩔 수 없게만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한켠에는 아직도 기대감으로 아쉬워하셨던 었다.

술드신 날에 간혹 미국에 5촌 당숙님 계시니까 지금이라도 유학가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아버지도 나를 설득하시진 못하셨으니까...


이제 보면, 가족간의 설득, 받아들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설득하거나, 받아들여야 한다.

외면하고, 지켜보고, 냉랭하게 기다려주는 것보다는

그런 지혜로움이 필요했었다.

아버지에게도 나같은 아들은 처음이었을거니까, 미숙했던 거고, 

나 또한 내 인생이라면서 너무 주장했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간다면, 더 노력하긴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자신없긴 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감에 너무 무책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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