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아버지에 대한 기억 - 3

 

결혼 후에 종교 문제로 부모님과 서먹해졌다.

속으로는 매우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일이고, 그러다가 내 작은 가족도 흔들리게 될 수 있었다.

내 가족을 지켜야했으니까.

몇년을 부모님을 보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결심하셨는지 내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다니시기로 하셨다.

당시 경기도 여주에 사셨는데, 전철이 뚫렸다면서, 전철 타고 오면 편하게 올 수 있으니, 오신다고 하셨다.

아마 마음 한 켠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리도 사무쳤기 때문에, 또한 이러다가 아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 하셨을 것이다.

여주에서 강동구 상일동까지 오는 길은 2시간 정도 걸릴 정도였다.

일요일 아침 11시까지 오셔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이른 아침에 출발하셨어야 했고, 그렇게 1년 정도를 함께 했다.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 중에 제일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1차로 쓰러지시면서, 재활을 했지만, 외출을 삼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와이프 추천으로 아버지는 집에서 성경 필사 작업을 하시기 시작했다.

그 넓은 방에 평상을 놓고 필사하시던 그 모습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셨다. 은혜로운 하나님은 만나주셨을거다.

더 건강해지시고 서울에 있는 교회로 한번 방문하셨는데, 담임 목사님을 다시 만나면서 울먹이셨다. 

왜 우셨을까?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셨던 것일 것이다.

살고 보니 대한민국에서의 아버지는 좀 외로운 편이다.

아버지의 삶도 그러셨을 것이다.

한국 전쟁을 어릴 때 겪으셨고, 지독한 가난을 겪으셨고, 독재 시절을 겪으셨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이른 아침에 출근하고 밤늦게 돌아오셨었다. 

유교사상이 지배적이었는데, 뜬금없이 아들이 하나님 믿겠다며 제사도 거부하면서 멀어지니 많이 속상하셨을거다.

외로우셨을거다.

다행이다 그래도

하나님을 만나셨으니까...

뇌출혈 1차이후 재활하고 아버지와 그간 못했던 인생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언제 가장 행복했냐는 나의 질문에

여주에서 서울까지 오셔서 내가 다니던 교회에 함께 다녔던 시간이 가장 행복하셨다고 답해주셨었다.

당신에겐 바삐 살던 인생에서 그제서야 안식하며 그 시간을 즐기셨던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

너무 송구스럽다.

잘 해드린 것도 별로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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